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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난다

오지랖언니 2026. 5. 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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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난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끝났다.
마지막 회를 보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은 늘 그렇다.
거창하게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아프다.

밥 먹는 장면,
지친 얼굴,
말없이 걷는 밤길,
겨우 참던 눈물,
그리고 누군가를 꼭 안아주는 순간.

그런 장면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이번 작품은 제목부터 참 정직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처음에는 이 제목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니 알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삶에서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라는 질문과 싸우며 살아간다는 것을.

비교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황동만은 실패해서 괴로운 사람이 아니다.
같이 시작한 친구들은 다 성공했는데
혼자만 제자리라고 느끼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참 많다.
누군가는 승진했고,
누군가는 집을 샀고,
누군가는 유명해졌고,
누군가는 잘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SNS를 열면
다들 자기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올려놓는다.
그러다 보면
가만히 있어도 자꾸 자기 삶을 비교하게 된다.
“나는 왜 아직 여기 있지?”
드라마는 그 질문을 끝까지 피하지 않는다.

쇼윈도 앞 포옹 장면이 오래 남았던 이유

나는 이 장면이 참 오래 남았다.
화려한 백화점 쇼윈도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장면.
값비싼 가방과 구두가 가득 진열된 공간 앞에서
상처투성이인 두 사람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고 있다.
그 장면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계속 사람의 가격을 매기는데
사람은 결국 사람의 온기로 살아나는구나."
그 포옹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지금 무너져도 괜찮다는 허락
너는 버려지지 않았다는 확인
네 감정을 내가 견디겠다는 태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 울컥했다.

웃음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었다

황동만은 인생의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웃기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다.
그런데 보다 보니 알겠다.
그 사람에게 웃음은
유머가 아니라 생존 기술이었다.
너무 우울하고 비참하면
사람은 어느 순간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농담으로 바꾼다.
비참함을 코미디로 씹어먹는다.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하루를 버틴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힘든데 더 웃긴 사람.
아픈데 더 밝은 사람.
무너지기 직전인데 남을 웃기는 사람.
가끔은 그 웃음이
“나 아직 안 끝났다”는 마지막 신호 같기도 하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난다

박해영 작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이 누군가를 구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처 있는 사람들이
겨우 서로를 붙들어주는 이야기.
완전히 회복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는 사람들이
“오늘 하루만 더 살아보자”고 말해주는 이야기.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
드라마를 보면서
마을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떠올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

누군가는 생활고와 싸우고,
누군가는 관계와 싸우고,
누군가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결국 필요한 건
거창한 해결책보다도

“당신 괜찮다”
“당신 잘못 아니다”
“오늘도 버텼네”

라고 말해주는 사람 한 명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회를 다 보고 나서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우울하고 비참하고 슬픈 스토리를 코미디로 씹어먹는 것.”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는 중인지 모르겠다.

울면서도 웃고,
지치면서도 다시 밥 먹고,
무가치함과 싸우면서도
또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라는 걸
이 드라마가  말해 준다.

#모두가자신의무가치함과싸우고있다 #모자무싸 #박해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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